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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기장

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/모리미 도미히코

약해진 몸으로 이 생각 저 생각 옮겨 다녀봤자 제대로 된
생각이 날 리 없었다.
입학 이후 결코 올라간 적 없고 앞으로도 전혀 올라갈 기미
가 없는 학업 성적, 취직활동은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구
실을 높이 내건 채 뒤로 미룰 뿐, 융통성도 없다. 재능도 없
다. 저축한 돈도 없다. 완력도 없다. 근성도 없다. 카리스마
도 없다. 사랑스러워 뺨을 갖다 대고 비비고 싶어지는 새끼
돼지 같은 귀염성도 없다. 이렇게 ‘없다,없다의 행렬’이 이
어져서는 도저히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.
나는 너무나 초조한 나머지 이부자리에서 기어 나와 한 동
안 두 평 남짓한 방안을 탁탁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돌아다
니면서, 어디 귀중한 재능이 굴러다니지 않나 살폈다. 그러
다 문득 1학년 때 ‘능력있는 매는 발톱을 숨긴다’는 말을 믿
고 ‘재능의 저금통’을 옷장 속에 숨겼던 기억이 어렴풋이
떠올랐다. “그래, 그게 있었어! 오오, 그거야!” 하고 나는 신
이 났다.
옷장을 열자 그 안은 온통 웃자란 버섯투성이였다. 나는 ‘
언제 이런 꼴이 됐지?’ 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미끈거리는
버섯을 밀어제쳤다. 그 속에서 꺼낸 ‘재능의 저금통’은 황
금 빛으로 빛났다. 마치 내 미래를 상징하는 것처럼. 나는
저금통을 거꾸로 들고 미친 듯이 흔들어보았지만 나온 것
은 한 장의 종이였다. 거기에는 ‘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
나 꾸준히’라고 쓰여있었다.

나는 그만 이부자리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다.

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/모리미 도미히코






이 비슷한 기분으로 힘들어 질 때마다 떠오르는 글.
몸에 힘이 다 빠져서
누워있어도 토할 것 같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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